황로술의 주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는 신선방술이다. 그것은 기복과 소재 벽사와 벽귀신 죽음과 관련된 부적과 주술 등의 신술과 섭생술 연단술 양생술 등의 선술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부록도파로 발전되고 후자는 단정도파로 발전된다. 현존하는 문헌에 근거해 볼 때 부록도술의 성행은 한무제 때까지 소급된다. 사기색은에서는 악산의 말을 인용하여 갑을일에는 청색 수레를 그리고 병정일에는 적색 수레를 그리고 임계일에는 흑색 수례를 그리고 경신일에는 백색 수레를 그리고 무기일에는 황생 수레를 그리는 것을 말한 것이다. 물과 관련된 일이 있을 때에는 황색수레를 탄다. 그때문에 그 아래에서 수레를 선택하여 악귀를 물리친다고 한것이다 라고 하였다. 물과 관련된 일이 있을 때 황색 수레를 탄다는 것은 토가 수를 이기기 때문이다...
한 무제는 제자백가를 내쫒고 유술만을 숭상하였다. 동중서 등이 구축한 천인 관계, 음양재이의 변화에 관한 유학은 황로술을 대신하여 관방철학이 되었다. 황로학의 지도자인 유안도 나라르 빼앗기고 죽었다. 그렇지만 황로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신성방술도 궁정과 민간에서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 회남자가 만들어 낸 우주생성론도 전/후 한 교체기의 위서에서 다시 나타났다. 후한시대에 황로학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후한서 초왕영전에서는 후한 광무제의 아들인 초왕 영이 다시 황로학을 좋아하고 불교를 배웠으며 몸을 재계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100년 후인 한 환제 때에는 궁중에 황제와 노자, 부처의 사당을 세웠으며 탁룡궁에서 황제와 노자를 제사지냈다. 제사에는 세 가지의 희생을 사용하였으며, 태관이 ..
한 초의 황로술과 후한 말 점차 발전하기 시작한 신선도교는 줄곧 유가의 정통에 대항하는 힘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전한시대 이래 유가와 도가는 사이이한 전통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동일한 관념체계로부터 나왔으며 또 동일한 서술체계를 사용하였다. 그들에게는 인과 지라는 개별적인 분야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일한 체험세계 속에서 병립하는 상호 보완적인 영역이었을 뿐이었다. 이 두 영ㅇ역 사이에는 눈에 띌만큼 큰 간극이 없다. 그것은 상호 보완적이므로 서로 교통하고 융합한다. 예컨대 묘당에 앉아 있는 유생과 산림에 은거하는 도사들은 모두 음양을 조절하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종종 육경과 방술을 두루 꿰고 있었다. 양자 사이의 구별은 대체적인 것일 뿐이다. 전자는 국가를 중시한 데 비해 후자는 개..